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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달걀을 너무 작지 않게 적당한 크기로 어떻게 퍼트렸어요? 난 할려고 해도 잘 안되던데?"
라면을 먹던 애가 묻는다. 어떻게 설명할까 한 3초 생각하고 있으니, 물어봤던 아이는 이미 다른 주제를 이야기해서 생각을 닫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술 한잔씩 하고 있었다. 그러고 한 5분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근데 진짜 이 라면 어떻게 끓인 거에요?"
잊고 있었는데 또 물어보네 생각하면서 대답하려 하니 이내 다른 말로 넘어가서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후 
"근데 그냥 묻는게 아니라 진짜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어떻게 끓여야 되요?"
이번에도 역시나 대답하려 하니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모두들 술도 적당히 취했고 이야기는 한 곳으로 집중이 되지 않았고 여기 저기서 웃음소리들이 들렸다. 또한 적당히 취한 나는 텔레비젼을 보듯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만 들어가면 폭풍잠이 쏟아지는 나는 점점 그들의 이야기가 작게 들리면서 정적이 흐르고 예전에 알던 어떤 한 소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를 떠올려보자.


초등학생인 소년은 말수가 적었다. 본인은 특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특이하게도 '오해'받는 일은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남들이 어떤 일로 나를 오해하게 된다면 난 입을 꼭 다물고 변명하지 않을거야. 그러면 더 오해하겠지만 그런후에 나중에 오해가 풀려서 미안해라고 한다면 난 아무렇지도 않은듯 괜찮아 이렇게 말하면 멋질거야.
그래서일까 소년은 자신이 생각한 것의 절반만 말하기로 했다. 덕분에 그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착한 친구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렇게 심한 오해를 살 만한 일도 생기지 않았다.



소년은 자라서 20살이 되었다. 그렇게 외향적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머리가 멍청해서일까? 그는 남들만큼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도 안다는 듯이 용기있게 나섰으며, 소년이 모르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알고 있었다. 그것이 부러웠다. 소고기는 핏기만 가시면 먹는거야. 고등학교때 친구가 평생가는 거야. 음악만으론 행복하게 살 수 없어. 우리가 잘못하면 부모님이 욕먹는 거야. 이건 그런거야..........
소년은 그러지 못했다. 아는 것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원래 절반만 말하기로 했으나 그것의 더 절반만 말하게 되었다. 소년은 몇 년동안 그걸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년은 자신이 생각의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소년은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었다. 소년은 그때 우연히 깨인 사람들의 생각을 읽게 되었다. 하나씩 또 하나씩 그럴때마다 자신은 얼마나 작은 세상에 갇혀서 살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놀랐다. 그래서 소년은 서둘러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해야 할 것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그렇게 공부해서 어느정도 알게 되었을때 소년은 들뜬 기분으로 봇물이 터진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고, 모든 가치는 전환되고, 시간은 흐름을 바꾼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함정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불행하게도 훨씬 뒤였다.



소년은 그렇게 훌쩍 나이를 먹었다. 이제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으며, 얘기를 끝낸 시점에서도  어쩌면 사태는 똑같다고 말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자기 요양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에 대한 사소한  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끓인 거에요?" 갑작스런 질문에 잠이 확 깬다. 상상도 거기서 멈춘다. 그래 이제 상상은 그만! 내가 이야기를 할 차례이지. 내가 말하기 시작한다. 설명은 시작해보지만 끝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현재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덧붙일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도 생각하고 있다. 잘만 되면 먼 훗날에 몇 년이나 몇십  년 뒤에 구원을 받은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달걀은 라면에 퍼트려지지 않고 병아리로 태어나고 나는 더 아름다운 말로  세계를 얘기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