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잠깐 학교에서 땜빵으로 일주일정도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업말고 비는 시간이 많았었는데, 특별히 배정된 자리가 없어서 상담실에서 혼자 쉴 때가 많았었죠. 어느날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한 남선생님이 여학생을 상담실로 데리고 와선 상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갈데가 없고 상담실도 꽤나 넓어서 난 한쪽 구석에서 책을 보고 있었고, 남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여기 생활기록부에다가 너의 대한 평가를 써야 된다. 넌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한 번 기록된 것은 평생 너를 따라다닌다. 네가 직업을 구하거나 면접을 볼때고 쓰인단다. 한 번 쓴 것은 고칠 수 없어. 난 여기에 너에 대해 나쁜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최대한 좋을 말을 쓰려고 한단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내 통제를 벗어나고 계속 약속을 지키지 않고 버릇없이 군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나쁜 말을 쓰게 되고 그게 평생 너를 따라다니니까 이렇게 너를 불러다가 어떻게든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선생님 말을 들어라”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난 속으로 아차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난 경험상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이들의 반발감이 더욱 거세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난 속으로 “저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는데....” 하고 걱정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학생의 표정은 더 안좋아졌고, 더욱 선생님한테 반항적으로 말했습니다.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말투였고 그래서 그 상담은 금방 끝이 났죠. 좀 안타까웠습니다.
난 그런 경우 학생들이 반발감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이유는 생각해보지 않았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조금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아이들은 선생님의 진심을 몰라줄까? 왜 더욱 반항적이 되는 것일까? 명확한 답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가지 정도로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아이들은 저런 이야기를 들었을때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말이라기 보다는 협박으로 들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위 사례의 경우 니가 계속 고치지 않으면 여기에 나쁜말을 쓸 것이고 이게 평생 너를 따라다니니 니가 고분고분 말을 잘듣든가 아니면 평생 손해보면서 살아라 알았냐? 라는 식의 협박으로 들렸을것 같네요.
“너 이렇게 공부 안해서 어른이 되면 힘든일 하면서 고생하는거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응?” 이런 말은 “너 이렇게 공부 안해서 어른이 되면 고생 직살나게 할거야. 그러니 내 말 듣는 것이 좋을걸? 잘 알아서 판단해 알겠냐?”라는 식으로 들렸을것 같네요. 이런 협박을 듣는 경우 좀 소심한 학생같은 경우는 아무런 말 않고 참거나 드센 학생의 경우는 반발을 하며 더욱 반항적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저런 식의 상담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나 학생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항상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담에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아니 교육에 절대적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책임전가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어떤 학생이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제쳐두고 일단 저런식으로 상담을 시작하면 모든 책임은 어른이 아닌 아이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런 책임전가는 사랑이라기 보단 사무적인 형태가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한 번 반항해서 들어온 상담실, 또 한번 반항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죠. 선생인 나는 내 일을 잘 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너의 행실은 모두 너의 책임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어느정도는 그런 말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온 환경들은 어른들이 만들지 않았던가요? 온갖 재미있고 신나는 게임들 영화들 오락거리들 야한 것들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선 모두 너의 책임이야 라고 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때 선생님은 그 어른들중 한명이 됩니다.
<아이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먼저 봅시다>
<이야기를 하기보단 일단 먼저 들어주세요>
앞선 사례로 넘어가서 그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은 결국은 생활기록부에 나쁜 말을 썼는지 아니면 대충 좋은 쪽으로 돌려서 썼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은 철이 없어 하고 씁쓸하게 생각하는걸 상상하니 나도 좀 씁쓸해집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과 아이가 안타깝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상담은 들어주는 것입니다. 누구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도 아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점을 새겨듣기 바랍니다.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상담이라는 것을
<사진출처 - 구글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