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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아이에 대해 어른들이 모르는것 1탄


 

“좋은 추억이었나요?”
“아마도. 대개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법이거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일부분에 나오는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 사이의 대화입니다. ‘대개는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법이거든’이란 문장이 마음을 맴도네요. 왜 멀리서 보면 안좋았던 지나간 일도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선 “기억력”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이 감퇴하기 마련입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기억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그래서 기억의 밀도가 감소하다 보니 “뭐야 월드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된 거야? 정말 빠르네”라고 생각하면서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기억의 밀도가 감소할까? 그것은 바로 우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들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단기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내용을 몸에 문신을 한다.>

 

 

 


 
 

먼 과거에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기억을 우리는 굳이 저장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좋았고, 색달랐고, 다시 느끼고 싶은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개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지요.

 

 

보통 많은 성인들이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그때가 좋은 거다. 나도 갈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하지만, 오히려 성장기에 겪는 많은 가치관 혼란과 고민,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말아야 하고, 보기 싫은 책은 읽어야 하고, 외워야 하고, 항상 욕망을 자제해야 하며 잠에 쫓기어 힘든 날을 보내는 것이 대한민국의 중고등 학생들입니다.

무작정 아름답다고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겪어온 것이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적당히 잊어버려서 멀리서 봐버리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낄 뿐이지.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생들 또는 아이들의 삶이 고단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눈칫밥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내가 말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요점입니다.

 

 

 

 

 

<조금만 나가면 이렇게 먹고, 사고, 보고, 노래하는 놀거리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 거리를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공부만 하라면 학생입장에선 참으로 곤욕이 아닐수 없다>

 

<성적인 호기심은 또 얼마나 강한 시기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은 시기인 청소년, 분명 즐겁기만 한 시기는 아니다.>

 

 

 

왜 아이들은 눈칫밥을 먹고 살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하려 할 때 대부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때마다 아이들은 지금 어른들의 기분을 알아야 하므로 표정 하나 하나 말투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어른들과의 같은 공간에선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치가 빠릅니다. 물론 눈치가 느린 아이도 있겠지만 그 아이조차도 어른이 되었을 때보다 아이일 때 알아차릴 수 있는 빠른 눈치가 있습니다. 지금 어른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아이 자기 자신의 욕구를 무마시키려는 거짓인지 쉽게 알아차리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사실을 대부분의 어른들이 잘 모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호자가 되어버려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눈치를 보면서 살았던 그때의 기억을 무시해버려서 인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눈치가 빠르다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요? 그것에 대한 답을 다음 사례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내가 가르치는 반의 과학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새로 온 학생 중에 유독 어리광 심한 준석(가명)이라는 중학교2년생이 있었습니다. 머리도 제법 좋고 공부도 중상위권이고 성실한 편이었습니다. 다른 학원에서 새로 온 준석은 수업시간에 문제를 풀라고 하면 몇 문제 풀다가 엎드려서 자려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미 다른 학원에서 다 배웠고 다 알고 있는 것이라는 이유였죠.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어르고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고 했지만 잘 먹히지 않았죠.

“네가 다 아는 것 같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그리고 아직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고 응용된 문제도 많이 나오니까 문제를 더 풀자

고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그러면 그것만 할게요. 다른 문제는 풀기 싫어요.”

라는 식이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정말 곤란했습니다. 그런 날이 여러 날 반복되자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결국 따로 상담실로 불러서 길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을 상담해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때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되는 것 같아 난 약간 화가 나면서 솔직한 내 입장을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잘 풀지 몰라도 이 문제를 꼭 풀어봐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너는 안다고 안 풀고 엎드리고 있으면 그걸 보는 다른 아이들도 자고 싶고 풀기 싫을 것 아니냐. 그때 내가 그 학생한테 엎드려 자지 말고 문제를 풀라고 하면 그 학생이 준석이는 왜 내버려 두고 저한테만 그러세요. 라고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 이 반에서 수업만 하면 내일이 끝나는게 아니라 책임지고 공부하도록 유도 하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인데, 모두에게 문제 풀지 말고 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냐. 애들이 공부를 하든 말든 난 내수업만 하면 돼 라는 식으로 내가 행동한다면 나는 책임감도 없고 내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만약 내가 너에게 딱 맞추어서 수업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겠지만 내가 가르치는 것은 너 뿐만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부분은 네가 공동의 생각에 맞추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같이 공부하는 거니까 말이야. 사회라는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때론 내가 양보할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실제로도 니가 다 아는것은 아니야. 좀 더 풀어봐서 정확한 개념도 생기고 응용된 문제도 풀어보고 더욱 숙달될 필요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

 

 

 

이 말을 했을 당시에 내가 너무 내 일인 부분만 강조하고 어렵게 이야기 하지 않았나 싶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상담이 있은 후부터 준석이의 태도가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왜 그럴까 라고 생각하나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 했기 때문이고 준석이는 눈치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학원강사인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데 자꾸 한 녀석이 자고, 이런 것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재미없고 도움 안 되는 수업이 되면 그 책임은 나에게 오므로 난 내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려고 노력했던 것이죠.

아이는 빠른 눈치로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내 입장이 그렇다는 것을. 하지만 내입장보다 준석이는 자신의 입장 즉 이미 알고 있는데 왜 또 공부하라고 하냐는 것이 더 강했기 때문에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준석이는 자신의 정의처럼 선생님의 정의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준석이는 나의 입장도 생각해주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서 그때부터 준석이는 수업시간이 엎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를 다 풀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은 풀었고, 수업에 방해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녀석과 나의 합의점이 이루어진 것이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내가 내려갈 수도 있지만 아이를 끌어올려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른이기에 아이들은 다룰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릅니다. 어른 입장에서 내가 머리를 써서 좀 돌려서 나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 하면 설득시킬 수 있겠지? 라는 조삼모사(朝三暮四)같은 어설픈 생각은 접어야 합니다. 혹여 그런 것이 한두 번 통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지속된다면 아이들은 언젠가 어른들의 그런 행동을 알아차리고 화를 내는 대신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정말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대해주길 바랍니다. 백프로는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그래야 합니다.

 

 

  어느날 밥을 흘리며 먹는 아이를 보고 그 쌀 한톨을 얻기위해 농부는 일년내내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겠냐고 훈교를 하자, 일년 동안 수백가마의 쌀을 얻으니 쌀 한톨을 얻기 위해 흘린 땅방울은 그 만큼의 수로 나누어야겠지요. 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버릇없이 말대꾸한다고 말하고 넘어갈 건가요?

 

 

  눈칫밥을 먹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눈치가 정말 빠릅니다. 그런 시절을 겪었지만 잊어버리고 살아 이제 어른이 된 당신, 그때의 기억을 무시하지 말고, 내가 어렸을 때 공부는 시원치 않을지 몰라도 얼마나 똑똑한 아이였는지, 세상의 걱정을 얼마나 한가득 담고 살았는지, 자신을 아이라 순진하게만 보던 어른들이 얼마나 순진해 보였는지 그때의 그 시절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 시절을 이해한다는 것, 바로 거기서 나와 아이들의 교육이 시작됩니다.

<사진출처 - 구글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