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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교육 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언젠가 한 무리의 성인 남자들이 모여서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 무언가 특별한 개혁이 필요한거 아니냐는 것이었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로서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개혁이 필요하겠지요. 그것보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교육 없이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게 만든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시험이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하면 누구나 명문대를 갈 수 있다는 것은 상대평가 앞에서는 거짓말이 됩니다. 누군가가 앞에 서면 누군가는 뒤에 서야 되는 것이 상대평가의 본질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일정 점수 이상이면 누구나 명문대를 가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게 하는 절대평가로 바꾸는 것은 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교육 열풍과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교육선진화 정책과 현실에서 교실과는 괴리감이 심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교육 열풍과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으나 쉬운 일이 아니고 거시적인 이야기이므로 저는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 해답은 평가방식을 단순한 지필시험에 의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각 대학들이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선발방식에 인성이나 특기 특성등을 중요하게 본다거나, 학교장이나 일선 교사들이 추천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거나, 학생의 특기나 봉사활동 경력등을 통해서 선발하거나 특정 과목의 뛰어난 학생을 그 과목에 맞는 학과에서 선발하거나 하는 방식이 있고 시험성적은 많은 심사기준중에 일부분이면 되겠지요. 물론 지금도 이렇게 학생들을 선발하고는 있지만 그 비중이 너무 작거나 없습니다.

 

 

 

 대부분은 학교 시험성적과 수능성적과 각 대학내 본고사 시험성적을 우선시 합니다. 이것은 좋지 못합니다. 단순히 외우기를 잘하고 문제에 정답을 잘 찾아내는 학생들이 맨 앞자리에서 리더가 되어 끌고 가게 하는 형태의 사회는 고착화되고 부패하기 쉽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중요한 자리에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암기력도 문제를 잘 푸는 능력도 아닌 바로 사람 됨됨이가 아닐까요? 그리고 창의성 같은 것은 지필시험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닐겁니다. 단순한 지필시험으로 선발하려는 형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고 있지 않은 걸까요? 몰라서일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는 아주 뿌리깊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보다는 제도와 기계에 의존하는 사회

 

 

 잠깐 음주단속 이야기를 하지요. 음주는 개인차가 큽니다. 누구는 소주를 1병 마시고 좀 취했는데 음주단속기에 불어도 수치가 훈방조치로 끝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구는  2잔만 마시고 거의 안취했는데도 음주단속에 걸리는 수치가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음주단속기 수치에 의존하기에는 무언가 정당하지 못한듯 합니다. 만약에 소주1병을 마셨는데 수치가 적게 나온 사람이 취했지만 훈방조치된 후 사고를 냈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또한 음주운전 기준인 0.05가 나온 사람은 면허가 정지되고 벌금을 내지만 0.049의 수치가 나온 사람에 대해서는 단속의 권한이 없습니다. 단지 0.001 차이로 명암이 갈리게 하는것 역시 타당하지 못해 보입니다. 제도의 헛점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음주 단속기 수치는 참고하면서 실제로 그 사람이 취했는지 안취했는지 일자로 걸어보게 하거나 한 발로 서 있게 하거나 또는 말을 시켜보거나 여러가지를 시켜보면서 취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정확할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비리"와 "불신"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지 못하기에 기계에 의존하게 되고, 기계에 한 번 측정된 기록은 무조건 경찰서에 보내져서 저장되는 형태의 제도에 의존하게 됩니다.

(언젠가 독일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알약을 개발했는데, 이 알약을 먹으면 1시간 이내로 몸속의 알코올이 거의 다 분해되어 수치가 안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주 후에 이 알약을 먹고 좀 쉬었다가 운전하라는 것이었죠. 그때 반발이 많았습니다. 체내 알코올은 없어졌지만 정신까지 깬 것은 아니지 않냐는 것이었죠.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었죠. 이와같이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항상 있습니다.)

 

 

 

 다시 교육으로 돌아와서 이야기 해보자면, 학생 선발기준에 생활기록부나 학교장 추천서가 크게 이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실제로도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보다는 학연, 지연을 따지는 대한민국에서는 추천서나 생활기록부가 편파적으로 쓰여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각 학교는 학생들을 더 많이 명문대를 보내기 위해 무조건적인 후한 평가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봉사활동도 의무적으로 시키고, 봉사활동에 대한 평가 또한 무조건 잘 써주고, 학생평가도 되도록 좋은 쪽으로 써줘야 한다는 사회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을 나온 사람의 전 직장 추천서 하나만 믿고 고용할 대기업이 없는게 현실인것 처럼, 사람을 믿지 못하니 제도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 제도가 바로 지필시험이겠지요. 학교고사, 수능, 토익, 논술 등등.

 

 

 

 정치적으로도 지역편파가 심한 대한민국에서 단순한 지필시험은 그것을 중화시켜주고, 모두에게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공정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음주단속 예처럼 단순히 기계나 제도에 의존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합니다. 그 문제점을 그 남성무리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평범한 성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점을 다른 제도로 메꾸려 한다는 것이지요. 무언가 특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 것도 그때문이겠죠. 조금은 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태생적으로 제도의 문제점때문에 나타났기 때문에 또 다른 제도로써 메꿀 수는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지필고사에 의존하는 상대평가인 이상, 교육제도를 어떻게 바꾼다 해도, EBS와 수능의 연계율을 100%으로 한다 해도, 각 학교 모든 교사들이 스타강사만큼 잘 가르친다 해도, 사교육 열풍과 입시위주의 교육은 없어질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상대평가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학교 교육현장은 인성교육은 없어지고, 사건 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평가의 본질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개인 한명 한명이 변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생각은 이렇습니다.

개인이 변해야 합니다. 개인 한명 한명이 좀 더 공정해져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는 일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과 공명정대함이 가득하고 그런 사회인식이 팽배했을때 비로서 우리는 사람을 믿게 되고, 제도의 문제점을 그 사람이 메꿀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바뀌어야 할까요? 제도도 아니고 학생들이 아닙니다. 바로 성인이 된 우리들이죠. 우리들 개인 한명 한명이 바뀌어야지 교육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바뀌지 않고 교육제도만 바꾸거나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이고, 이기심입니다.

교육은 아래에서부터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타산지석! 교육은 위에서 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지. 교육이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치 후진국에서 교육 선진국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보여주기 편하고 바꾸기 편한 교육제도를 마구 바꾸는 바람에 힘들어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메마른 감정싸움에 매달려 있을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제도만을 탓하며 교육을 비판하지는 않았나요?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며 남의 탓만 하지는 않았나요?

비판의 화살을 돌려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지 않으나 혹자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교육에 대한 인식이 널리 자리 잡은 나라들이 있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진출처 - 구글검색>